한산군수(韓山郡守)  광식(光烒) |
1616년(광해군 8)∼1664년(현종 5). 조선 중기 문신. 자는 자회(子晦)이다. 본관은 안동(安東[新])이고 거주지는 한양(漢陽)이다. 증조부는 신천군수(信川郡守) 김생해(金生海)이고 조부는 돈녕부도정(敦寧府都正) 김극효(金克孝)이다. 부친 경주부윤(慶州府尹) 김상복(金尙宓)과 모친 이인기(李麟奇)의 딸 청해이씨(靑海李氏) 사이에서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. 백부 선원(仙源) 김상용(金尙容)과 청음(淸陰) 김상헌(金尙憲)이 있다.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제용감정(濟用監正) 신량(申湸)의 딸 고령신씨(高靈申氏)이고 둘째 부인은 공조좌랑(工曹佐郞) 조익(趙釴)의 딸 함안조씨(咸安趙氏)이다. 어려서부터 총애를 받을 정도로 얼굴이 희고 잘생겼으며 풍채가 좋았다. 문장에도 뛰어나 1635년(인조 13) 증광시 진사 3등 9위로 합격하였다. 처음 벼슬은 전설사별검(典設司別檢)으로 시작하여 장악사재직장(掌樂司宰直長)‧금부도사(禁府都事)‧형조좌랑(刑曹佐郞)‧영산현감(靈山縣監)‧형조좌랑(刑曹佐郞)‧형조정랑(刑曹正郞)‧보은현감(報恩縣監) 등을 역임한 후 한산군수(韓山郡守)로 나간 지 1년 만에 관사에서 생을 마감하였다. 사람을 대할 때 법도를 따르지 않고 장황하지 않았으며 아첨하며 세상에 부침하는 줏대 없는 자들을 보면 얼굴에 침을 뱉으려고 하는 등 세상과 화합됨이 적어 교유하는 친구가 적었는데 그 중에 육곡(六谷) 서필원(徐必遠)‧귀계(歸溪) 김좌명(金佐明)과 친분이 다소 깊었다. 묘는 경기도 양주(楊州)에 있다. |